본문 바로가기
역사 속 대한민국

구로공단 여공들과 노동자들이 살아가던 1970~80년대

by 제제블로그 2026. 10. 10.

1970~80년대 서울 구로와 가리봉 일대에는 수많은 공장과 젊은 노동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수출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과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구로공단으로 향했습니다. 공장 주변에는 기숙사와 벌집촌, 시장과 식당이 생기며 하나의 거대한 생활권이 형성됐습니다. 낮에는 생산라인이 돌아가고, 밤이 되면 골목과 상점에는 퇴근한 노동자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공장들은 하나둘 자리를 옮겼고, 구로공단의 모습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구로공단 여공들과 노동자들이 살아가던 1970~80년대
구로공단 여공들과 노동자들이 살아가던 1970~80년대

1. 구로공단에 전국의 젊은 노동자들이 모여들던 이유

구로공단은 1960년대 정부가 수출 중심의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조성된 대표적인 공업단지였습니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마련된 뒤 1965년부터 구로동 일대에 공단 건설이 시작됐고, 이후 가리봉동과 가산동까지 산업시설이 확대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봉제·섬유·가발·전자제품처럼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체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섰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1977년에는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약 10만 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생산현장에 필요한 인력도 부족해졌고, 기업들은 전국 각지에서 젊은 노동자를 모집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산업화와 함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청년층이 증가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서울 공장에 취업하는 여성도 많았습니다. 비교적 숙련도가 낮아도 취업할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돕거나 자신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구로공단은 1970년대 한국 수출산업의 중요한 생산기지였습니다. 1971년 우리나라 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을 당시 구로공단이 차지한 비중은 약 9%에 달했습니다. 이러한 성장 속에서 구로와 가리봉 일대는 짧은 기간에 농촌과 주거지역의 모습에서 공장과 노동자가 밀집한 산업지역으로 변했고, 전국에서 모인 젊은 노동자들이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치는 주요 노동력이 되었습니다.

2. 여공들의 기숙사와 벌집촌, 밤늦게까지 이어진 공단 생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생활은 공장 밖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일부 대기업은 직원 기숙사를 운영했지만 모든 노동자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공단과 가까운 가리봉동과 구로동에 방을 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좁은 공간을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눈 이른바 ‘벌집’ 형태의 주거시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가리봉동을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배후 주거지로 기록하고 있으며, 벌집과 골목길은 당시 지역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벌집은 한 건물 안에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가 많았고, 부엌이나 화장실을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낮은 임금을 받는 젊은 노동자들에게는 공장과 가깝고 비교적 저렴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좁은 골목에는 출퇴근 시간마다 수많은 노동자가 한꺼번에 몰렸고, 주변에는 식당과 시장, 세탁소, 만화방, 다방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이 형성됐습니다. 장시간 근무를 마친 뒤에도 공부를 이어가는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정규 학교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젊은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이 운영됐고, 퇴근 후 검정고시나 중·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가리봉시장은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구입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람들을 만나는 지역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공장, 벌집촌, 시장과 골목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면서 가리봉동은 단순한 공업지역의 주변부가 아니라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의 일상이 집중된 산업화 시대의 생활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3. 구로공단이 사라지고 디지털단지로 바뀐 과정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구로공단도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임금이 오르고 토지가격이 상승하면서 봉제·섬유 등 노동집약적 제조업체들은 생산비가 더 낮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경제의 중심 역시 단순 가공과 경공업에서 전자·정보통신·첨단산업으로 이동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대규모 제조공단을 과거 방식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처음에는 패션 관련 업체와 중소 제조업체 등이 들어섰고, 이후 정부는 기존 산업단지를 첨단 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정보통신과 벤처산업이 성장하면서 구로공단에는 소프트웨어, IT 서비스, 전자·정보통신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굴뚝과 넓은 생산라인을 갖춘 공장이 줄어드는 대신 지식산업센터와 고층 업무용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역시 가리봉동 일대가 1980년대 말 산업구조 재편을 거쳐 기존 구로공단에서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화했다고 설명합니다. 현재 옛 구로공단 지역은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를 중심으로 수많은 IT·벤처·서비스 기업이 모여 있는 업무지역으로 변했습니다. 같은 장소이지만 과거에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출근했다면, 오늘날에는 사무직과 기술직 근로자가 지식산업센터로 출근하는 풍경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구로공단의 변화는 특정 공단의 쇠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섬유와 봉제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정보통신과 지식산업으로 이동한 대한민국 산업구조의 변화를 한 지역 안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