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광복 직후 ‘도떼기시장’에서 시작된 부산 국제시장
부산 국제시장의 시작은 한국전쟁보다 조금 앞선 1945년 광복 직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난 뒤 부산에는 일본인이 두고 간 생활용품과 각종 물자가 쏟아져 나왔고,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가져온 물건까지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큰 장터가 형성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물건을 한꺼번에 묶어 사고파는 거래 방식이 많아 ‘도떼기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정식 상점보다 좌판과 노점 형태의 장사가 많았고, 의류와 식기, 생활잡화처럼 당장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활발하게 거래되었습니다. 이후 시장은 ‘자유시장’이라는 이름을 거쳐 점차 규모를 갖추었고, 외국에서 들어온 물품과 수입품이 많이 유통되면서 ‘국제시장’이라는 명칭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부산항을 통해 다양한 물자가 들어오는 도시의 특성도 시장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광복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며 생계를 이어가던 공간이 훗날 부산을 대표하는 대형 전통시장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2.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생계를 책임진 시장
1950년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부산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에 몰렸고, 도시 곳곳에는 임시 거처와 판잣집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부산은 전쟁 기간 피란수도의 역할을 맡으면서 인구가 급증했고, 국제시장 역시 사람과 물자가 집중되는 거대한 생계 공간이 되었습니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던 피란민들은 시장 주변에서 작은 좌판을 펴거나 손수 만든 음식과 생활용품을 팔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누군가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을 되팔았고, 누군가는 구호품과 헌옷, 통조림, 담배, 비누 같은 물건을 거래했습니다. 당시 정식 유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시장은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였습니다. 시장 골목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뒤섞였고, 서로 다른 사투리와 음식문화, 생활방식이 한곳에서 만났습니다. 국제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다시 생계를 시작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전쟁의 혼란뿐 아니라 어떻게든 가족을 먹여 살리려 했던 피란민들의 생활력이 함께 남아 있습니다.
3. 없는 것이 없던 시장에서 부산의 역사 명소가 되기까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국제시장의 활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품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상품이 늘어나면서 국제시장은 ‘없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다양한 물건을 취급하는 종합시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의류와 신발, 가방, 주방용품, 전자제품, 잡화는 물론 당시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던 외국산 제품까지 판매되면서 전국의 상인과 소비자가 부산을 찾았습니다. 특히 경제성장이 본격화되기 전에는 해외 물건을 직접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국제시장에서 수입품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이 등장하면서 시장의 역할도 달라졌지만 오래된 골목과 상점은 부산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풍경으로 남았습니다. 국제시장 주변에는 먹거리 골목과 깡통시장, 자갈치시장 등이 이어져 부산 원도심 특유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은 이 공간을 한 가족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이 겹쳐지는 무대로 보여주면서 시장을 다시 전국적으로 알렸습니다. 영화 속 배경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었고, 오래된 상점과 골목 자체가 하나의 관광자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국제시장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광복과 전쟁, 피란생활, 산업화의 시간을 함께 품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역사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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