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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수학여행의 단골 목적지가 경주였던 이유

by 제제블로그 2026. 9. 5.

한때 수학여행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목적지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 경주였습니다. 전국의 학생들은 관광버스와 기차를 타고 경주로 향해 교과서에서 보았던 신라의 문화유산을 직접 만났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숙소 생활과 단체사진, 작은 기념품까지 수학여행만의 특별한 추억도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경주가 오랫동안 대한민국 수학여행의 대표적인 목적지로 사랑받았던 이유와 그 시절의 여행문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수학여행의 단골 목적지가 경주였던 이유
수학여행의 단골 목적지가 경주였던 이유

전국의 학생들이 경주로 향했던 수학여행

1970~90년대 경주는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찾는 대표적인 수학여행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수학여행은 교실 밖에서 자연과 역사, 지역문화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는 학교 교육활동의 하나였습니다. 여러 학생을 동시에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에 목적지를 정할 때는 교육적 가치뿐 아니라 교통과 숙박, 단체관광을 수용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했습니다. 경주가 주목받은 배경에는 국가적인 관광개발도 있었습니다. 1970년대 정부는 경주를 국제적인 역사문화 관광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개발사업을 추진했고, 도로와 관광시설을 비롯한 기반시설이 정비됐습니다. 보문관광단지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조성돼 이후 숙박시설과 관광시설이 들어서는 기반이 됐습니다.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대규모 학생 이동에 유리했습니다. 학교에 따라 기차를 이용해 경주로 이동하거나 현지에서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일정을 운영했습니다. 이후 고속도로와 도로망이 확충되고 관광버스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경주를 찾기가 더욱 편리해졌습니다. 여기에 여행사와 숙박업소 등 단체관광을 지원하는 산업이 성장하면서 수백 명 규모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정도 운영하기 쉬워졌습니다. 이러한 조건들이 맞물리며 경주는 오랫동안 ‘수학여행 하면 떠오르는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주 수학여행의 역사는 학교 교육뿐 아니라 1970년대 이후 국내 관광산업과 교통망이 성장해온 과정까지 함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교과서 속 역사를 직접 만나는 도시

경주가 교육여행지로 높은 가치를 지닌 가장 큰 이유는 신라 천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책이나 사진으로만 접했던 유적을 실제 공간에서 관찰하면서 역사적 사건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장소인 불국사는 통일신라 불교문화와 건축기술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입니다. 다보탑과 석가탑을 비롯해 청운교·백운교 등 다양한 문화재가 있어 건축과 미술사를 함께 학습할 수 있습니다. 석굴암에서는 석굴 구조와 본존불을 통해 당시 불교조각과 석조기술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첨성대는 신라시대의 천문 관측과 과학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장소이며, 주변에는 왕궁과 왕릉에 관련된 유적이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대릉원 일대에서는 거대한 고분을 직접 볼 수 있고, 천마총 등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신라 왕족의 장례문화와 공예기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월성, 동궁과 월지 등 여러 유적을 함께 살펴보면 신라 왕경이 어떤 공간으로 구성됐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경주에서는 정치·종교·과학·건축·미술 등 서로 다른 주제를 한 도시 안에서 연결해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경주는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많은 관광지가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실제 문화유산과 연결할 수 있는 거대한 현장학습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문화유산의 밀집성은 오랫동안 경주가 교육 목적의 여행지로 선택되는 중요한 이유가 됐습니다.

관광버스와 단체사진으로 남은 수학여행의 추억

과거 수학여행의 모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학생들을 태운 관광버스였습니다. 여러 대의 버스가 줄지어 이동했고, 학생들은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목적지를 차례로 방문했습니다. 버스마다 담당 교사가 탑승해 인원을 확인했으며 휴게소에 도착하면 반별로 움직이는 등 단체생활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친구들과 간식을 나눠 먹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도 당시 수학여행에서 흔히 만들어지던 추억이었습니다. 숙박 역시 오늘날의 가족여행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학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여관이나 단체숙소 등이 이용됐고, 한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취침시간이 있었지만 친구들과 밤늦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사진은 수학여행의 중요한 기록물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학생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거나 개인 카메라를 가져온 학생이 친구들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여행이 끝난 뒤 현상된 사진을 나눠 갖거나 졸업앨범에 수학여행 사진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관광지 주변 상점에서 엽서와 열쇠고리, 작은 장식품처럼 지역을 상징하는 기념품을 구입하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학여행의 목적지와 운영방식은 다양해졌습니다. 고속철도와 항공교통이 발달하면서 제주도 등 먼 지역으로 이동하기 쉬워졌고, 일부 학교에서는 해외 체험학습을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대규모 단체관광뿐 아니라 소규모 테마형·체험형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학여행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친구들과 학교 밖에서 며칠을 함께 보내며 새로운 지역을 경험한다는 의미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래된 경주 단체사진 한 장에는 당시의 여행문화뿐 아니라 교통수단과 숙박, 사진문화까지 그 시대 학생들의 생활상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