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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가 비행장에서 금융도시가 되기까지

by 제제블로그 2026. 9. 11.

지금의 여의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도시로 익숙하지만, 처음부터 빌딩이 가득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비행기가 뜨고 내리던 비행장이 자리했던 공간이었고, 이후 대규모 도시개발을 거치며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여의도가 비행장에서 오늘날의 금융중심지로 변화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여의도가 비행장에서 금융도시가 되기까지
서울 여의도가 비행장에서 금융도시가 되기까지

1.비행장이 있던 섬, 여의도의 옛 모습

오늘날 높은 빌딩과 금융회사가 빼곡하게 들어선 여의도는 과거 한강 가운데 펼쳐진 넓은 모래벌판에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주거단지와 업무시설이 들어서기 전에는 뽕나무를 재배하거나 가축을 기르는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했으며, 넓고 평평한 지형은 이후 비행장이 들어서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여의도에 비행장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입니다. 일본 육군이 넓은 여의도 벌판에 간이비행장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비행장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초기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편과 여객 운송 등 항공 분야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비행학교가 세워져 조종사를 양성하기도 했으며, 1930년대 이후에는 일본의 전쟁 확대와 함께 군사비행 훈련의 성격도 강해졌습니다. 광복 이후 여의도 비행장은 미군에 접수되었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군사시설로 사용됐습니다. 전쟁 이후에는 다시 민간항공이 운항하면서 서울의 중요한 항공 관문 역할을 맡게 됩니다. 1950년대에는 국제공항 기능까지 담당하면서 국내외를 오가는 항공기가 여의도에서 뜨고 내렸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의 김포공항이 아니라 여의도가 서울을 대표하는 공항 역할을 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서울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여의도 비행장은 넓은 공항으로 확장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1958년 국제공항 기능이 김포공항으로 이전되면서 여의도는 군 전용 비행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공군부대까지 성남으로 옮겨가면서 1971년 여의도 비행장은 공식적으로 폐쇄됐습니다. 약 반세기 동안 비행기가 오가던 여의도의 시대가 끝나고, 이 넓은 땅은 전혀 새로운 도시로 변화를 준비하게 됩니다.

2.한강 개발과 함께 시작된 여의도 신도시 건설

1960년대 후반 서울은 급격한 인구 증가와 도시 확장으로 새로운 업무·주거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한강 주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의도를 계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지역으로 주목했습니다. 특히 한강의 범람을 막기 위한 제방 공사가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여의도 둘레를 따라 제방이 조성되고 내부 토지를 정비하면서 대규모 도시개발의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여의도 개발은 단순히 건물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도로와 업무지역, 주거지역, 공공시설을 배치하는 계획도시 형태로 추진됐습니다. 넓은 도로와 대규모 블록이 만들어졌고, 서울의 기존 도심과 연결하기 위한 교량과 교통망도 함께 확충됐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이후 여의도가 대형 업무시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이 됐습니다. 1970년대에는 여의도의 성격을 결정짓는 주요 시설들이 하나둘 들어섰습니다.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되면서 여의도는 정치와 행정 기능을 가진 지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주변에는 방송사와 기업의 업무시설도 확대됐습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비롯한 대규모 공동주택도 조성되면서 업무와 주거가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가 만들어졌습니다. 이처럼 여의도는 한강 정비와 계획적인 토지 개발을 통해 짧은 기간 안에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변화했습니다. 이후 금융회사와 증권 관련 기관이 집중되면서 지금의 금융도시 여의도로 발전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도시 구조도 이 시기에 갖춰지게 됩니다.

3.증권가가 모이며 대한민국 금융중심지가 된 여의도

여의도가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금융도시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증권시장의 이동이었습니다. 1979년 7월 증권거래소가 여의도에서 새롭게 문을 열면서 이 지역에는 본격적으로 자본시장의 중심 기능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거래소 역시 당시 증권시장이 여의도로 이전하면서 여의도가 ‘한국의 월스트리트’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증권거래소가 자리 잡자 거래 업무를 지원하는 관련 기관과 증권사들도 주변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미 1970년대에는 증권의 보관과 결제를 담당하는 기관이 만들어졌고, 1977년에는 증권시장 전산화를 담당하는 증권전산회사도 설립됐습니다. 이후 자본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증권사와 투자 관련 회사들이 여의도에 사무실을 두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주식과 채권, 투자금융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과 인력이 밀집한 지역으로 발전했습니다. 1980~1990년대 국내 주식시장이 성장하면서 여의도의 금융도시 이미지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주가지수선물시장과 코스닥시장 등이 등장하고 증권거래가 전산화되면서 자본시장의 규모와 업무 영역이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증권사 본사와 금융 관련 협회, 투자기관 등이 한 지역에 모이자 여의도는 ‘증권가’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독특한 업무지구를 형성하게 됐습니다. 여의도의 역할은 증권 중심지를 넘어 종합적인 금융중심지로 확대됐습니다. 2009년 정부는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지구를 공식 금융중심지로 지정했습니다. 금융중심지는 여러 금융기관이 자금 조달과 거래, 운용 등 다양한 금융활동을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지역을 의미합니다. 이후 여의도에는 국내 금융회사뿐 아니라 외국계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 핀테크 기업 등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도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여의도는 어느 날 갑자기 금융도시가 된 것이 아니라 증권시장을 중심으로 수십 년 동안 금융기관과 전문 인력이 모이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지금도 여의도를 상징하는 수많은 고층빌딩 안에서는 증권·투자·자산운용을 비롯한 다양한 금융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지역이라는 여의도의 상징성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