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밤새 TV를 볼 수 있지만, 한때는 TV에도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늦은 밤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오늘의 방송도 끝났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애국가와 함께 하루를 열고 닫았던 그 시절 TV 방송 풍경과 사라진 ‘방송 종료’의 역사를 만나보겠습니다.

1. TV를 켜도 방송이 나오지 않던 시절
지금은 TV를 켜면 새벽에도 뉴스와 예능, 홈쇼핑을 볼 수 있지만 1970~80년대의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방송되는 매체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지상파 방송은 정해진 편성시간에 맞춰 송출됐으며, 프로그램이 없는 시간에는 방송 자체가 중단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에는 정부의 에너지 절약 정책과 방송시간 규제 등의 영향으로 평일 낮 시간대 방송이 제한되기도 했습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에는 전력과 에너지 절약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면서 TV 방송시간 역시 영향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아침 방송이 끝난 뒤부터 저녁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화면에서 정규 프로그램을 볼 수 없는 시간대가 존재했습니다. 방송이 없는 시간에는 화면에 시험용 패턴인 테스트 패턴이 나타나거나 아무 프로그램도 송출되지 않았고, 시청자는 방송 시작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원하는 시간에 콘텐츠를 골라 보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 컬러TV 방송이 본격화되고 방송환경이 발전한 뒤에도 한동안 이러한 시간제 편성은 이어졌습니다. 당시 TV 편성표가 신문의 중요한 생활정보였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의 방송시간을 미리 확인했고 그 시간이 되면 거실에 모여 TV를 시청했습니다. ‘TV를 켜는 시간’ 자체가 정해져 있었던 시대, 이것이 1970~80년대 텔레비전 문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2. 애국가는 왜 TV 방송의 시작과 끝에 흘러나왔을까?
과거 지상파 방송에는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루의 방송을 시작하거나 모든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때 태극기가 화면에 등장하고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모습입니다. 당시 방송은 한정된 전파를 사용하는 공공적 매체라는 성격이 강했고, 방송국에는 자신의 방송을 식별하기 위한 호출부호가 부여돼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규 프로그램뿐 아니라 방송국을 알리는 고지와 각종 안내도 방송 운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방송을 시작할 때에는 방송국을 식별할 수 있는 화면과 음성 안내 등이 이어지고 애국가가 편성됐으며, 이후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방식이 사용됐습니다. 방송을 마칠 때도 마지막 프로그램이 끝났다고 곧바로 화면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종료 절차를 거쳤습니다. 방송국에 따라 세부적인 구성과 순서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애국가와 태극기 영상, 방송국명과 호출부호를 알리는 고지 등이 대표적인 요소였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방송이 갖고 있던 공공성과 국가적 성격이 반영돼 있습니다. 특히 TV 보급이 확대되던 시기의 지상파는 국민 대부분이 동일한 방송을 시청할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매체였습니다. 애국가 역시 이러한 방송환경 속에서 하루의 방송을 열고 닫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지막 고지가 끝난 뒤에는 정규 프로그램 송출도 종료됐습니다. 그래서 늦은 밤까지 TV를 보던 사람들에게 애국가가 들려온다는 것은 단순히 한 프로그램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 볼 수 있는 TV 방송이 모두 끝났다”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태극기와 애국가가 TV의 하루를 열고 닫던 풍경은 시간제 방송이 일반적이었던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방송문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3. 심야방송에서 24시간 방송까지, 사라진 ‘방송 종료’
TV의 ‘마지막 시간’은 방송시간이 점차 확대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과 같은 대형 행사를 계기로 심야 시간까지 이어지는 방송을 경험할 기회가 늘어났고, 이후 방송시간에 대한 규제도 단계적으로 완화됐습니다. 1990년대에는 방송시간이 더욱 늘어나면서 이른 아침과 늦은 밤까지 TV를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자리 잡았습니다. 시청환경을 크게 바꾼 또 하나의 변화는 1995년 케이블TV 본방송의 시작이었습니다. 여러 전문채널이 등장하면서 몇 개의 지상파 채널을 정해진 시간에 시청하던 시대에서 원하는 분야의 채널을 선택하는 다채널 시대로 이동했습니다. 이후 위성방송과 디지털방송까지 확대되면서 밤과 새벽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12년에는 지상파 방송의 하루 24시간 방송이 허용되면서 방송시간을 둘러싼 환경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여기에 IPTV와 OTT까지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시청자가 방송시간에 맞추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콘텐츠를 선택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그렇게 한밤중 애국가와 함께 찾아오던 ‘오늘의 방송 종료’라는 풍경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서 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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