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도 SNS도 없던 시절,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는 가장 설레는 방법 중 하나는 ‘미팅’이었습니다. 친구의 주선으로 3대3, 4대4 약속을 잡고 대학가 다방에 모여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나누던 청춘들이 있었는데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전화번호를 종이에 적어 건네고, 다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만남의 일부였습니다. 삐삐와 PC통신,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이런 만남의 방식도 조금씩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갔습니다. 오늘은 다방에서 시작된 대학가 미팅부터 소개팅으로 이어진 그 시절 청춘들의 만남과 연애문화를 들여다보겠습니다.

1. 대학생들은 왜 ‘미팅’에 열광했을까?
1970~80년대 대학가는 이전 세대와 다른 청년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던 공간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자가 늘어나면서 캠퍼스를 중심으로 또래 청년들이 모였고, 청바지와 통기타, 음악다방과 축제 등 대학생만의 문화도 발달했습니다. 이와 함께 젊은 남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식 가운데 하나로 ‘미팅’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SNS나 데이팅 앱을 이용해 모르는 사람과 쉽게 연락할 수 없었습니다. 남녀공학 대학도 있었지만 남학교·여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한 경우도 많았고, 사회적으로도 낯선 이성에게 직접 연락해 만남을 제안하는 일이 지금보다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친구나 선후배가 연결해 주는 만남은 비교적 부담 없이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미팅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이 처음부터 단둘이 만나는 것보다 여러 명의 친구가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대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연애 상대를 찾는 목적뿐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사교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대학 축제나 동아리, 친구 관계를 통해 다른 학교와 미팅 약속이 잡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미팅은 단순한 연애 유행을 넘어, 통신수단과 이성 교류의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시대에 대학생들이 인간관계를 넓혀가던 하나의 청춘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2. 다방에서 만난 3대3·4대4 미팅, 그날의 풍경
약속한 날이 되면 남녀 대학생들이 3대3이나 4대4처럼 같은 인원으로 만나는 단체 미팅이 흔했습니다. 만남을 주선한 친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장소로는 대학가 주변의 음악다방이나 일반 다방, 경양식집과 카페 등이 이용됐습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커피나 음료를 주문한 뒤 이름과 학교, 학과 등을 소개하면서 어색한 첫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간단한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팅 방법은 모임과 시대에 따라 다양했으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정하는 이른바 ‘파트너 정하기’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서로 관심이 맞으면 미팅이 끝난 뒤 따로 연락하거나 다음 만남을 약속하면서 실제 연애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가장 다른 점은 연락 방법이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상대와 다시 만나려면 집이나 하숙집의 유선전화 번호를 주고받거나 다음 약속의 날짜와 장소를 미리 정해두는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약속 장소에서 상대가 나타나지 않으면 바로 연락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다방의 작은 테이블과 커피잔, 종이에 적어 건네던 전화번호는 그래서 당시 미팅을 상징하는 풍경이 됐습니다. 지금보다 연락은 불편했지만,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만남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대였습니다.
3. 미팅에서 소개팅으로 변화한, 청춘의 만남
1990년대를 거치면서 젊은 세대의 만남 방식에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만나는 대학가 미팅문화가 이어지는 한편, 친구나 직장 동료 등이 서로 어울릴 만한 두 사람을 연결해 주는 일대일 소개팅도 더욱 익숙한 만남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통신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소개받은 뒤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까지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1990년대에는 삐삐(무선호출기)가 젊은 층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면서 상대방에게 호출번호를 남기고 공중전화로 연락하는 모습이 일상화됐습니다. 같은 시기 PC통신이 확산되자 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 등의 동호회와 채팅 공간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교류문화도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휴대전화와 인터넷 이용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변화는 더욱 커졌습니다. 약속시간이 바뀌어도 즉시 연락할 수 있게 됐고, 문자메시지를 통해 만난 뒤에도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메신저가 새로운 소통공간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스마트폰과 SNS가 보편화되면서 만남의 범위는 학교나 지인의 인맥을 넘어 훨씬 넓어졌습니다. 결국 대학가의 단체 미팅에서 소개팅, PC통신과 휴대전화, 오늘날의 온라인 만남으로 이어진 변화는 통신기술의 발전이 청춘의 연애와 인간관계 형성 방식까지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보여주는 생활문화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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