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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의 시대

by 제제블로그 2026. 9. 24.

“오라이!”라는 짧은 외침 하나에 버스가 움직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승객의 차비를 받고, 정류장을 알리고, 출입문을 살피며 버스 한 대의 흐름을 책임지던 사람들, 바로 버스 안내양이었는데요. 지금은 기계와 시스템이 대신하는 일을 당시에는 한 사람이 목소리와 몸으로 직접 해냈습니다. 익숙한 제복과 밝은 구호 뒤에는 장시간 서서 일해야 했던 고된 노동과 젊은 여성들의 삶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의 시대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 안내양의 시대

1. 버스에는 왜 ‘안내양’이 필요했을까?

오늘날 버스는 승객이 교통카드를 찍고 탑승하면 운전기사가 차량 운행과 출입문 조작을 함께 담당하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특히 1960~70년대 시내버스에서는 승객의 승하차와 요금 수납을 담당하는 별도의 승무원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 흔히 ‘버스 안내양’ 또는 ‘여차장’이라 불린 여성 승무원이었습니다. 당시 안내양은 버스 운행을 돕는 핵심 인력이었습니다. 안내양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는 승객에게 차비를 직접 받고 승차권을 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교통카드나 자동 요금징수기가 없었기 때문에 승객이 버스에 타면 안내양이 차 안을 오가며 목적지 등을 확인하고 요금을 받았습니다. 노선과 정류장을 잘 모르는 승객에게 내릴 곳을 알려주거나 정류장 이름을 외쳐 승하차를 안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버스 출입문 관리 역시 안내양의 몫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운전석에서 자동으로 문을 여닫는 차량이 일반적이지 않아 안내양이 승객이 모두 탔는지 확인하고 출발을 도왔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할 때마다 승객의 안전을 확인하고 운전기사와 호흡을 맞춰야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안내양은 단순히 요금만 받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금 수납부터 승객 안내, 승하차 관리와 운행 보조까지 담당했던 승무원이었습니다. 버스 한 대를 운전기사와 안내양이 함께 운영하던 모습은 자동화된 대중교통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 우리나라 버스의 대표적인 풍경이었습니다.

2. “오라이!” 한마디와 함께 움직였던 버스의 하루

버스 안내양의 하루는 이른 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운행이 시작되면 수많은 정류장을 반복해서 오가며 승객을 상대해야 했고, 특히 출근과 등교 시간이 되면 업무 강도는 크게 높아졌습니다. 버스 안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는 상황에서도 승객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살펴야 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오라이!”입니다. 영어 ‘All right’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승객의 탑승이 끝났음을 운전기사에게 알리는 출발 신호처럼 사용됐습니다. 시끄러운 도로와 버스 안에서 짧고 크게 전달하기 좋은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안내양이 차체를 두드리거나 신호를 보내 기사와 소통하는 모습도 당시 버스 풍경의 일부였습니다. 그러나 낭만적인 추억으로만 보기에는 근무환경이 상당히 고되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버스에 오르내려야 했고 대부분의 근무시간을 서서 보내야 했습니다. 만원버스에서는 승객 사이를 움직이기도 어려웠으며 혼잡한 승강장에서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사고 위험과 승객과의 갈등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버스 안내양은 산업화 시기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온 젊은 여성들이 많이 종사했던 직업이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제복과 친숙한 구호 뒤에는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견뎌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라이!”라는 한마디에는 당시 거리의 추억뿐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던 도시를 움직였던 여성 노동의 역사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3. 한 시대의 직업이었던 버스 안내양은 왜 사라졌을까?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버스 운영 방식의 자동화와 인건비 절감이었습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승객이 스스로 요금을 내는 시민자율버스가 확대됐습니다. 승객이 승차하면서 요금함에 직접 현금이나 회수권을 넣는 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별도의 승무원이 일일이 차비를 받을 필요가 줄어들었습니다. 차량 자체도 달라졌습니다. 운전기사가 운전석에서 출입문을 조작할 수 있는 자동문 장치가 보편화되고, 하차벨과 안내방송 등 새로운 설비가 갖춰지면서 과거 안내양이 담당하던 역할을 기계와 승객이 나누어 맡을 수 있게 됐습니다. 버스 회사 입장에서도 운전기사와 안내양 두 사람이 한 차량에 근무하던 방식보다 기사 한 명이 운행하는 형태가 운영비를 줄이는 데 유리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내양이 근무하는 버스와 자율버스가 한동안 함께 운행하면서 점차 무인 승무 방식으로 전환됐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안내양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1989년 자동차운수사업법 관련 승무원 탑승 의무 규정이 폐지되면서 제도적으로도 버스 안내양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버스 요금 지불 방식은 회수권과 토큰을 거쳐 교통카드로 발전했고, 정류장 안내도 자동방송과 전광판이 담당하게 됐습니다. 오늘날에는 실시간 도착정보까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버스 이용환경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버스 안내양의 소멸은 단순히 하나의 직업이 사라진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손과 목소리에 의존했던 대중교통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변화였습니다. 이제 거리에서 “오라이!”라는 외침은 들을 수 없지만, 수많은 승객의 출퇴근과 등하굣길을 책임졌던 버스 안내양은 1960~80년대 대한민국 대중교통과 여성 노동사를 보여주는 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