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계절 내내 여행객이 찾는 속초에도 바다와 항구가 삶의 중심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이곳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고, 항구에는 명태와 오징어를 실은 배들이 쉼 없이 드나들었는데요. 그러다 1970년대 설악산 관광이 본격화되면서 속초의 거리에는 여행객과 숙박시설, 상점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1960~70년대 속초가 피란민의 정착지이자 항구도시에서 오늘날 관광도시의 모습을 갖춰가기까지 그 시간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1. 전쟁이 끝난 뒤, 속초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50년대 이후 속초의 도시 성장을 이해하려면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속초는 38선 이북에 위치해 해방 이후 북한의 관할에 들어갔다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남한 지역이 되었고, 휴전 이후에는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함경도 출신 피란민과 실향민들이 정착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특히 함경남도 함흥·흥남·신포 등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청초호와 속초항 주변에 터전을 마련하면서 속초의 인구와 생활권도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대표적인 공간이 오늘날의 아바이마을입니다. 피란민들은 청호동 일대의 모래사장과 빈 땅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고기잡이와 막노동, 장사 등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바이’는 함경도 방언으로 나이 든 남성을 뜻하는 말로, 함경도 출신 주민들이 많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전쟁 직후의 속초는 오늘날과 같은 관광도시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낮은 주택과 비포장도로가 많았고 전기·상하수도 같은 도시 기반시설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고 행정·상업 기능이 확대되면서 도시의 규모도 점차 커졌습니다. 결국 속초는 1963년 1월 1일 시로 승격됐습니다. 1960년대 속초의 성장은 단순한 도시 확장이 아니라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면서 형성된 분단 이후 대한민국 도시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2. 오징어와 명태가 넘쳐나던 항구도시 속초
1960~70년대 속초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진 핵심 산업 가운데 하나는 수산업이었습니다. 동해와 맞닿은 속초에서는 속초항과 동명항을 중심으로 어선이 드나들었고, 항구 주변에는 어획물을 사고파는 시장과 수산물 가공·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특히 동해안의 대표 어종인 명태와 오징어는 당시 속초의 경제와 생활을 설명할 때 빼놓기 어려운 수산물이었습니다. 어선이 항구로 돌아오면 잡아 온 생선을 육지로 옮기고 종류와 크기에 따라 선별한 뒤 판매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항구 주변에서는 어민뿐 아니라 생선을 나르는 노동자와 상인, 중매인, 건조·가공업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산업을 중심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잡힌 수산물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 운송됐으며, 일부는 말리거나 가공해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어업은 가족의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습니다. 남성들이 배를 타고 조업에 나서는 동안 가족들은 그물 손질이나 수산물 판매·가공 등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항구와 시장이 곧 일터이자 생활공간이었던 셈입니다. 어획량이 많은 날에는 항구가 사람과 생선으로 북적였지만, 바다 날씨가 나쁘거나 어황이 좋지 않으면 수입도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겨울철 동해안에서 잡히던 명태는 훗날 속초와 인근 지역의 음식문화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속초를 관광과 먹거리의 도시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바탕에는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을 통해 도시의 경제가 움직이던 항구도시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3. 설악산 관광과 도로가 바꿔놓은 1970년대 속초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속초에는 바다와 함께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설악산 관광이었습니다. 설악산은 1970년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이후 자연경관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아오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성장했습니다. 1971년에는 설악산 케이블카가 운행을 시작하면서 권금성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접근성도 높아졌습니다. 관광객 증가는 속초의 도시 기능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설악동을 중심으로 숙박시설과 음식점, 기념품점 등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시설들이 들어섰고, 속초 시내에서도 여관과 상점 등 서비스업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설악산뿐 아니라 동해안의 해수욕장과 바다 풍경까지 함께 즐기려는 여행객이 늘면서 속초는 산과 바다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여행지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로와 대중교통의 개선 역시 관광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강원 영동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정비되고 장거리 버스 운행이 확대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속초를 찾는 여건이 이전보다 나아졌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한 국내여행 문화가 성장하면서 설악산과 속초를 함께 둘러보는 여행도 확산됐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970년대 속초는 기존 산업에만 의존하는 도시에서 벗어나 숙박·음식·교통·상업이 함께 움직이는 관광도시의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속초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 가운데 하나가 된 배경에는 바로 이 시기에 본격화된 설악산 관광과 도시 서비스 산업의 성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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