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한강을 건너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한때 서울에는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손에 꼽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도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넓은 한강 위에도 하나둘 새로운 다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요. 다리가 하나 놓일 때마다 사람들의 이동 경로가 달라지고, 서울의 생활권도 조금씩 넓어졌습니다.

1. 낡은 도심을 바꾸려 했던 세운상가의 탄생
1960년대 서울은 산업화와 인구 증가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심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종로에서 을지로·청계천을 지나 퇴계로까지 이어지는 지역에는 오래된 건물과 소규모 점포, 무허가 건축물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조금 특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을 철거해 만든 소개공지(疏開空地)가 남아 있었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빈 공간에 판잣집과 점포 등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서울시는 이 길게 이어진 공간을 정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도심 개발의 상징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이 추진한 도시 현대화 사업 가운데 하나로 대규모 상가 건설이 계획됐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았습니다. 계획의 범위는 종묘 앞에서 퇴계로까지 약 1km에 걸쳐 이어지는 거대한 건축군이었습니다. 1967년 가장 먼저 세운상가가 완공됐고, 이후 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풍전호텔 등 여러 건물이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며 세운상가군을 형성했습니다. ‘세운(世運)’이라는 이름에는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인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세운상가는 단순히 오래된 지역에 건물 하나를 세운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낙후된 도심 공간을 대규모 건축을 통해 재편하고 현대적인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당시 도시계획의 상징적인 결과물이었습니다. 1960년대 서울이 빠르게 현대도시로 변해가던 과정에서 등장한 세운상가는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건축물로 주목받았습니다.
2. 주거·상업을 한곳에, 세운상가는 왜 ‘미래도시’였을까?
세운상가가 당시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보였던 이유는 건물의 규모뿐만 아니라 한 건축물 안에서 여러 도시 기능을 해결하려는 발상에 있었습니다. 저층부에는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고 위층에는 업무공간과 주거시설이 배치되는 등 상업과 생활 기능이 수직으로 결합됐습니다. 지금은 복합건물이 흔하지만 당시 서울에서는 매우 새로운 형태였습니다. 특히 건물들을 연결하는 공중 보행데크는 세운상가의 미래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였습니다. 자동차가 다니는 지상 도로와 사람이 걷는 공간을 분리하고, 보행자가 건물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입니다. 건물 내부에는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당시로서는 현대적으로 받아들여진 설비도 갖춰졌습니다. 아파트 역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상점과 직장 가까이에 거주하는 새로운 도시생활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운상가는 단순한 상가가 아니라 ‘건물 안에 하나의 작은 도시를 만든다’는 개념을 보여준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주상복합건물과 복합상업시설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구조는 1960년대 사람들에게 미래 서울을 미리 보여주는 듯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3. 전자제품은 세운상가로,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중심이 되다
세운상가의 성격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이곳과 주변 상가에는 라디오·텔레비전·전축·앰프를 비롯한 전기·전자제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완제품뿐 아니라 저항·콘덴서·트랜지스터 같은 각종 전자부품을 판매하는 가게와 수리점까지 모이면서 세운상가는 전자제품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전문상가로 성장했습니다. 당시는 가전제품이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였습니다. 라디오와 흑백TV가 가정에 들어오고 오디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전자제품을 구입하거나 고치려는 수요도 커졌습니다. 세운상가에는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뿐 아니라 회로와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전자기술자와 수리기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술 생태계 덕분에 세운상가에는 독특한 별명도 생겼습니다. 원하는 부품을 구해 직접 기계를 제작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기술과 부품이 모여 있다는 의미에서 “세운상가에서는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실제 탱크를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세운상가의 풍부한 부품과 기술력을 과장해 표현한 말입니다. 1980년대에는 개인용 컴퓨터와 음향·영상기기 등 새로운 전자제품까지 등장하면서 취급 품목도 다양해졌습니다. 소비자에게는 최신 전자제품을 구경하고 구입하는 장소였고, 기술자에게는 부품과 정보를 얻고 서로의 기술을 교류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당시 세운상가는 단순한 쇼핑센터를 넘어 서울 전자상가 문화와 기술 생태계를 상징하는 장소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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