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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서울 풍전호텔을 아시나요? 1970년대 도심을 지켰던 호텔의 역사

by 제제블로그 2026. 9. 15.

서울 을지로 한복판에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호텔이 있습니다. 세운상가와 함께 성장하며 외국인과 영화인들이 머물기도 했던 그곳, 바로 풍전호텔인데요. 화려했던 도심의 풍경이 달라지고 호텔의 이름까지 바뀌었지만, 그 자리에는 여전히 옛 서울의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풍전호텔을 아시나요? 1970년대 도심을 지켰던 호텔의 역사
서울 풍전호텔을 아시나요? 1970년대 도심을 지켰던 호텔의 역사

1. 세운상가 한가운데 풍전호텔은 왜 들어섰을까?

풍전호텔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세운상가가 만들어진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운상가가 자리한 종로에서 퇴계로 사이의 남북 축은 일제강점기 말 공습에 대비한 소개공지로 조성됐다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판잣집이 밀집한 지역으로 변했습니다. 이후 서울시는 급격한 도시화에 대응하고 낙후된 도심을 정비하기 위해 1960년대 중반 이곳을 대대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66년 취임한 김현옥 서울시장 시절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를 맡았고, 1967년 현대상가 준공을 시작으로 약 1.1km에 걸친 거대한 건축군이 차례로 들어섰습니다. 세운상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국내 최초의 대규모 주상복합 건축물로, 아래층에는 상점이 들어서고 위쪽에는 아파트가 배치되는 새로운 도시 형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건축군은 현대상가와 세운상가 가동,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 모두 8개 건물로 이어졌습니다. 즉 풍전호텔은 주변에 우연히 들어선 숙박시설이 아니라 세운상가군을 이루는 건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종로·을지로 일대는 서울의 상업과 업무 기능이 밀집한 핵심 도심이었고, 세운상가 주변으로 전기·전자와 기계·금속, 인쇄 등 다양한 업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러한 도심 한복판에 호텔까지 함께 자리했다는 사실은 당시 세운상가가 단순한 전자상가가 아니라 주거·상업·숙박 기능까지 결합한 새로운 도심 공간으로 구상됐음을 보여줍니다.

2. 외국인과 영화인도 찾았던 그 시절 풍전호텔

1970~80년대의 호텔은 오늘날처럼 여행객이 쉽게 선택하는 숙박시설과는 성격이 조금 달랐습니다. 해외여행 자체가 자유롭지 않았고 외국인 관광객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시절이어서, 서울의 규모 있는 호텔은 외국인 방문객과 사업가, 해외에서 들어온 문화·예술 관계자들을 맞이하는 국제적인 공간이라는 의미가 컸습니다. 풍전호텔 역시 이러한 시대의 서울 호텔문화를 보여주는 장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특히 풍전호텔은 한국 영화사의 기록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한 영화인들의 구술자료에는 1970년대 한국을 방문했던 홍콩 영화 관계자들의 숙소로 풍전호텔 등이 이용됐다는 증언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한국과 홍콩 영화계에서는 합작영화 제작과 배우·제작진의 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호텔은 단순히 잠을 자는 장소를 넘어 해외 영화인들이 머물며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됐습니다. 풍전호텔이 자리한 위치도 이러한 역할과 잘 맞았습니다. 주변에는 종로와 을지로, 충무로, 명동이 있었고 특히 충무로는 오랫동안 한국 영화산업을 상징하는 지역이었습니다. 영화사와 극장, 인쇄·현상 관련 업체 등이 모여 있던 도심에서 호텔은 국내외 관계자들이 머물기에 유리한 숙박 거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호텔은 객실뿐 아니라 식당과 연회 공간 등을 갖춘 도심의 근대적인 사교·접객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풍전호텔의 옛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호텔 한 곳의 추억을 되짚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외국과의 교류가 지금보다 훨씬 귀했던 시절, 서울이 국제도시로 성장해가면서 나타난 1970~80년대 도심 호텔문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3. 풍전호텔에서 PJ호텔까지, 건물은 어떻게 남았을까?

세운상가 일대의 전성기가 영원히 계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서울의 중심 기능이 강남과 여의도 등 새로운 지역으로 분산되고 전자제품 유통 구조까지 달라지면서 세운상가 일대 역시 이전과 다른 변화를 맞았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세운상가 일대의 변화 과정에서 1979년 이후 기능 쇠퇴와 재개발 논의가 이어졌고, 2003년 이후에는 청계천 복원과 함께 도심 구조가 다시 재편됐다고 설명합니다. 건물군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북쪽의 현대상가는 철거됐지만 세운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를 비롯한 여러 건물은 남았고, 풍전호텔이 있던 건물 역시 세운상가군의 역사 속에 흔적을 이어왔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세운상가 조사자료에서도 풍전호텔은 세운상가군을 구성했던 8개 건물 중 하나로 명확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풍전호텔은 리뉴얼과 명칭 변경을 거치며 호텔 PJ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과거 풍전호텔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소의 역사를 따라가 보면 1960~70년대 서울 도심 개발의 흔적과 오늘날의 호텔이 한 공간에서 연결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풍전호텔은 완전히 사라진 옛 건축물을 돌아보는 이야기와는 조금 다릅니다. 주변의 도시 풍경과 호텔의 이름, 이용문화는 크게 달라졌지만 그 자리에 호텔 기능이 이어지면서 과거 서울과 현재 서울을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새 건물이 계속 들어서는 서울 한복판에서, 풍전호텔의 역사는 세운상가와 함께 시작된 도시개발의 시간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