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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남산에 외인아파트가 있던 시절

by 제제블로그 2026. 9. 16.

지금은 울창한 숲이 펼쳐진 남산 자락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서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의 주거공간으로 만들어진 ‘남산 외인아파트’는 한때 현대화되는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건물이었는데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남산의 경관을 가린다는 평가를 받았고, 결국 1994년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남산에 외인아파트가 있던 시절
남산에 외인아파트가 있던 시절

1. 남산에는 왜 외국인 전용 아파트가 세워졌을까?

1970년대 초 서울은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도시의 모습도 크게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해외 기업과 기관의 활동이 늘어나고 외국인 기술자와 주한미군 등 국내에 장기간 체류하는 외국인도 존재했지만, 이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현대적인 주택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서울에서는 아파트라는 주거형태 자체가 아직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전이었고, 난방과 급수, 주차 등 생활편의시설을 갖춘 주택 역시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전용 주택단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용산구 한남동 남산 자락에 자리했던 남산 외인아파트였습니다. 서울기록원에는 남산 외인아파트 단지의 주택지 조성사업이 1971년 준공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남산 자락은 서울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비교적 쾌적한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한남동이라는 입지 역시 외국인 주거지역을 조성하기에 유리했습니다. 서울시는 오늘날 남산 외인아파트를 당시 주한미군 등을 위한 외국인 전용 아파트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외국인 전용 주택의 등장은 서울이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해가는 과정의 한 단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고층 아파트를 볼 수 있지만, 1970년대 남산의 숲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던 외인아파트는 산업화와 도시개발이 빠르게 진행되던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2. 남산 외인아파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산 외인아파트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위치와 규모였습니다. 남산 한남동 자락의 높은 지대에 여러 동의 대형 아파트가 자리하면서 멀리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건축물이 됐습니다. 주변에 숲이 펼쳐진 산 중턱에 커다란 콘크리트 아파트가 서 있는 모습은 오늘날의 빽빽한 서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서울의 주택과 비교하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주거공간이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서울 시민이 단독주택이나 한옥, 좁은 골목의 주택가에서 생활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독립된 아파트 단지에서 생활하는 방식 자체가 상당히 현대적으로 비쳤습니다. 높은 곳에 자리한 만큼 서울 시가지와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입지 역시 남산 외인아파트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모습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현대화된 서울의 새로운 주거시설 가운데 하나였지만, 남산의 자연경관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이 남산의 능선과 경관을 가린다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 역시 외인아파트가 약 20여 년 동안 남산 경관을 가리는 시설로 인식됐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남산 외인아파트는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 건물이었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현대적인 주거시설이었지만, 훗날에는 개발 과정에서 자연경관과 도시환경을 얼마나 고려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3. 남산을 가리던 아파트는 왜 폭파 철거됐을까?

남산 외인아파트의 운명이 크게 달라진 것은 1990년대였습니다. 서울시는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을 추진하며 개발 과정에서 훼손된 남산의 역사성과 자연경관을 회복하려 했습니다. 외인아파트뿐 아니라 남산에 자리했던 여러 시설을 정비하거나 이전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되돌리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외인아파트 역시 철거 대상으로 결정됐습니다. 1994년 외인아파트는 발파 방식으로 철거됐으며, 거대한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습은 전국에 생중계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철거는 단순히 오래된 아파트를 없애는 공사가 아니라 남산의 자연경관을 되찾는 사업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파트가 사라진 뒤에는 건물만 치우고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훼손된 지형을 복구하고 녹지를 되살리는 작업이 진행됐으며, 옛 외인아파트 부지에는 남산 야외식물원이 조성됐습니다. 이후 인근에는 야생화공원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남산을 찾으면 당시의 거대한 아파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때 외국인을 위한 현대적인 주거단지였던 공간이 약 20여 년 뒤에는 철거되고 다시 숲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남산 외인아파트의 탄생과 철거는 개발을 우선하던 서울이 자연과 도시경관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