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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한 교실에 70명, 콩나물 교실이라 불렸던 시절

by 제제블로그 2026. 8. 25.

지금은 한 교실에 20~30명 정도가 익숙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교실 풍경은 전혀 달랐습니다. 책상 사이 빈틈조차 찾기 어려울 만큼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어 ‘콩나물 교실’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는데요. 오늘은 한 반에 60~70명이 함께 공부했던 대한민국 과밀학급 시대의 모습을 돌아보겠습니다.

한 교실에 70명, 콩나물 교실이라 불렸던 시절
한 교실에 70명, 콩나물 교실이라 불렸던 시절

한 반에 60~70명, 콩나물 교실의 등장

교실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칠판보다도 빽빽하게 들어찬 책상과 아이들이었습니다. 1960~70년대에는 한 학급에 60~70명 안팎의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는 작은 책상이 교실 끝까지 이어졌고, 통로조차 넉넉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자리에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또렷했지만, 뒷자리에서는 칠판 글씨를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빼야 하기도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수십 명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조용했던 교실은 금세 왁자지껄한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이처럼 한정된 교실에 많은 학생이 빼곡히 모여 있는 모습 때문에 당시 과밀학급에는 자연스럽게 ‘콩나물 교실’​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불편함도 많았지만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공부하고 뛰놀았던 교실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특별한 학창 시절의 풍경으로 남았습니다. 콩나물 교실은 단순히 학생이 많았던 학교의 모습이 아니라, 빠르게 성장하던 대한민국의 인구와 사회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와 교실을 계속 늘려야 했던 대한민국

아이들이 해마다 빠르게 늘어나자 학교는 더 이상 기존 건물만으로는 학생들을 받아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시로 인구가 몰리던 시기에는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교실 부족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새로운 학교를 짓고, 기존 학교에는 건물을 덧붙여 교실 수를 늘리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운동장 한쪽에 별관이 들어서고, 몇 층 되지 않던 교사가 위로 더 높아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주택가가 조성되면 그 주변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세우는 일도 점차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학생 증가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학교를 하나 지어도 곧 다시 부족해지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공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에 또 증축 계획이 잡히는 경우도 있었고, 교육시설 확충은 당시 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시 곳곳에는 새로운 학교가 생겨났고, 동네의 모습도 학교를 중심으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앞에는 문방구와 분식집이 자리 잡고, 등하굣길에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계속 세워야 했던 당시의 풍경은 급속한 인구 증가와 도시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었습니다.

콩나물 교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 시대

시간이 흐르면서 대한민국의 교실 풍경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출생아 수가 줄고 교육시설이 꾸준히 확충되면서 학급당 학생 수는 예전보다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한 교실을 가득 채우던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들었고, 학생 한 명이 사용하는 공간도 훨씬 넉넉해졌습니다. 수업 방식 역시 달라져 선생님이 많은 학생을 한꺼번에 통제하기보다 토론이나 모둠활동처럼 참여형 수업이 늘어났습니다. 냉난방 시설과 디지털 기기, 전자칠판 등 교실 환경도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부 농어촌 지역에서는 학생 수 감소로 한 학년에 학생이 몇 명뿐인 학교가 생기거나 학교 통폐합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도시에서도 과거처럼 학생이 넘쳐나는 모습보다는 학령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한때는 교실이 부족해서 고민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빈 교실과 줄어드는 학생 수를 걱정하는 시대로 바뀐 셈입니다. 콩나물 교실의 소멸은 단순한 교육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구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