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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대한민국

만원버스에 매달려 출근하던 서울 시민들

by 제제블로그 2026. 9. 19.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때 서울의 아침에는 버스 출입문에 매달려 출근하고 등교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도시는 무서운 속도로 커졌지만, 늘어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를 교통수단은 그만큼 충분하지 못했는데요. 만원버스 속에서 승객을 안내하던 버스 안내양의 모습 역시 그 시절 서울을 기억하게 하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만원버스에 매달려 출근하던 서울 시민들
만원버스에 매달려 출근하던 서울 시민들

1. 서울의 버스는 왜 매일 ‘만원’이 되었을까?

1960~70년대 서울은 산업화와 함께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도시였습니다. 1960년 약 245만 명이었던 서울 인구는 1970년 약 553만 명으로 10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공장과 회사, 학교가 도심 곳곳에 자리 잡는 동안 주택 부족으로 주거지역은 미아리·불광동·신림동·봉천동 등 외곽으로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침이면 외곽 주거지에서 도심의 직장과 학교로 이동하는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을 실어 나를 교통수단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서울 지하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4년이었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시민들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은 시내버스와 전차였습니다. 서울 전차마저 1968년 운행을 종료하면서 버스의 역할은 더욱 커졌습니다. 출근·등교 시간이 되면 정류장마다 긴 줄이 만들어졌고 한 대의 버스에 최대한 많은 승객이 올라타야 했습니다. 결국 당시의 ‘만원버스’는 단순히 사람이 조금 붐비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급격하게 늘어난 도시 인구를 교통 기반시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면서 나타난 서울 도시화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2. 버스 안내양과 출입문에 매달린 승객들

만원버스 시대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바로 버스 안내양, 당시 표현으로 ‘여차장’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교통카드 단말기나 자동문이 없던 시절, 안내양은 승객의 승하차를 돕고 요금을 받아 승차권을 처리하며 정류장을 알리는 등 버스 운행에 필요한 여러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 되면 업무는 훨씬 힘들어졌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 앞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 안내양은 승객들이 조금이라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승차를 유도해야 했습니다. 차 안이 꽉 찬 상태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타려고 하면서 출입문 주변까지 승객으로 가득 찼고, 과밀 승차가 심했던 시기에는 차량 밖이나 출입구 부근에 위태롭게 매달려 이동하는 모습도 당시 사진과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버스 안의 풍경도 지금과 크게 달랐습니다. 승객들은 몸을 돌리기 어려울 만큼 빽빽하게 서 있었고, 안내양은 그 사이를 오가며 요금을 받아야 했습니다. 학생들의 등교시간과 직장인의 출근시간이 겹치는 아침에는 혼잡이 특히 심했습니다. “오라이”와 같은 안내양 특유의 구호 역시 이 시절 버스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만원버스는 낭만적인 추억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과밀 승차는 추락과 끼임 같은 안전사고 위험을 높였고, 안내양 역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출입문에 사람들이 매달린 옛 사진 한 장에는 당시 서울의 생활상뿐 아니라 부족했던 교통시설과 노동환경, 안전문제가 함께 담겨 있는 셈입니다.

3. 지하철이 등장하면서 달라진 서울의 출근길

서울 대중교통의 새로운 전환점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찾아왔습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이어지는 지하철과 기존 국철 노선이 연결되면서 시민들은 도로 교통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갖게 됐습니다. 더 큰 변화는 1980년대에 나타났습니다. 1980년 2호선 일부 구간을 시작으로 노선이 단계적으로 연장됐고, 1985년에는 3호선과 4호선까지 개통되면서 서울의 지하철망이 본격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과 주거지가 성장하는 등 시민들의 생활권에도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물론 지하철이 생겼다고 만원버스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서울의 인구와 이동량 역시 계속 증가했기 때문에 버스 혼잡은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다만 버스에 집중됐던 수요를 지하철이 나누어 맡게 되면서 서울의 출퇴근은 ‘버스 중심’에서 버스와 지하철이 함께 움직이는 대중교통 체계로 변화했습니다. 오늘날 거대한 수도권 지하철망의 시작도 바로 이 시기에 놓인 첫 노선에서 출발했습니다.